소리로 얽힌 16개의 퍼즐과 미스터리
1. 서론
2025년 5월, 대한민국 입시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선의의 경쟁>이 베일을 벗는다.
전국 상위 1%의 학생들이 모이는 명문 고등학교. 그곳에 전학 온 소녀 '슬기'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치열한 심리전과 숨 막히는 경쟁,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
특히 이 영화는 단순한 학원물이 아니다. 16개의 주요 인물 구도(트릴로지 플롯)를 교차시키며, 거대한 음모와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있어 '소리', 특히 음향 설계는 시나리오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음향 감독의 시선으로, <선의의 경쟁>이 어떻게 사운드를 통해 긴장, 의혹, 그리고 감정의 균열을 표현했는지 살펴보자.
2-1. 침묵과 작은 소리, 심리전을 지배하다
<선의의 경쟁>의 무대는 고요한 듯 치열한, 고등학교 안팎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소음 대신, 미묘한 침묵과 작은 소리들로 심리전을 표현한다.
복도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 교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숨죽인 한숨, 시험지를 넘기는 종이 마찰음—이러한 일상적인 소리들이 극단적으로 확대되어 삽입된다. 이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슬기와 함께 숨을 죽이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긴장하게 만든다.
특히 슬기를 둘러싼 수상한 시선과 미묘한 따돌림, 교묘한 경쟁 구조는 대사 없이도, 소리의 밀도 변화만으로 드러난다.
조용한 학교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전장이 되어 버리는 순간을 청각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2-2. 16개의 퍼즐 – 인물 간 긴장을 소리로 교차시키다
이 영화는 단순한 1:1 대결 구조가 아니다. 슬기를 중심으로 16명의 인물군이 얽히고설키는 트릴로지 구도를 따른다. 이 복잡한 인간관계는 사운드를 통해 리듬 있게 구성된다.
각 주요 인물은 고유한 음향 모티프를 가진다. 예를 들어, 슬기를 견제하는 학생 주변에서는 불안정한 스트링 사운드가 흐르고, 은밀히 조종하는 인물 주변에서는 낮은 베이스 진동음이 서서히 깔린다. 반면, 겉으로는 친근해 보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은, 무심한 일상 소음과 함께 미세한 왜곡음을 교차시키며 이중성을 드러낸다.
장면 전환마다 사운드 레이어가 교차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인물 간 긴장 구조를 체감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플롯 설명 없이, '느끼게 하는' 서사의 완성도를 높인다.
2-3. 붕괴와 진실 – 정적과 폭발음을 이용한 감정 연출
<선의의 경쟁>의 후반부는, 감정이 폭발하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때 사운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초반의 침묵과 미세한 소리들이 축적되던 리듬은, 후반에 이르러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진실이 폭로되는 장면에서는 배경 음악이 완전히 사라지고, 단 하나의 심장박동 소리만 남는다. 이어지는 순간, 마치 벽이 무너지는 듯한 초저주파 폭발음과 함께 화면이 전환되면서 관객에게 심리적 충격을 안긴다.
또한 붕괴 이후의 장면에서는, 다시 철저한 정적이 흐르며 마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듯한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정적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상실'과 '자책'의 무게를 소리로 전달하는 장치가 된다.
3. 결론
<선의의 경쟁>은 단순한 입시 미스터리물이 아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16개의 인물 퍼즐과, 보이지 않는 긴장 구조를 소리로 짜맞춘 심리극이다.
침묵과 미세한 소리로 긴장을 조율하고, 인물 간의 감정선을 사운드로 교차시키며,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폭발음과 정적의 강렬한 대비로 감정의 끝을 밀어붙인다.
이 영화는 시각적인 서스펜스보다 오히려 청각을 통해 심리적 압박감을 설계한, 매우 드문 스타일의 스릴러라 할 수 있다.
2025년 5월,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 전쟁. 그리고 그 뒤에 흐르는 소리의 전쟁.
<선의의 경쟁>은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느껴야만 완성되는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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