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뒤에서 울리는 진실의 사운드
서론
2025년 6월 19일 개봉한 영화 <악의 도시 (The Devil You Know)>는 배우 출신 임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현우성이 주연으로 나선 심리 스릴러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관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불신과 위선, 그리고 조용히 뒤틀려 가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대사보다는 ‘소리’와 ‘정적’ 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연출이 돋보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음향감독의 시선으로 <악의 도시>가 어떻게 소리를 통해 공포와 진실을 쌓아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조용함이 먼저 말하는 영화, 정적으로 짜인 심리 스릴러
<악의 도시>는 음악이나 자극적인 음향효과 없이도 깊은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이 영화는 정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말이 멈춘 순간 들려오는 숨소리, 방문이 닫히는 소리, 창밖의 바람 소리까지 모두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진실을 의심하거나, 과거의 불편한 기억을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공간의 소리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들리며, 관객의 불안을 점차 증폭시킵니다. 이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한 정밀한 사운드 연출입니다.
2.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틈의 소리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대사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과 말 사이의 침묵, 그 속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들이 인물 간의 감정과 관계의 균열을 드러냅니다. 냉장고의 저주파 소리, 마룻바닥의 삐걱임, 거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는 모두 의도적으로 설계된 요소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감정을 억누르며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에서는 그의 숨소리, 말끝의 떨림, 침 삼키는 소리까지 정밀하게 포착되어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음향감독은 이러한 사운드를 통해 대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하고, 관객에게 인물의 진심을 '듣게' 만듭니다.
3.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청각이 만드는 몰입
영화의 후반부,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음악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관객은 주인공의 심장 소리, 거칠어진 호흡, 주변에서 사라지는 소음을 통해 그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끄러운 음악 없이도, 오히려 절제된 소리 설계만으로도 훨씬 강렬한 긴장감과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임 감독은 배우 출신답게 감정의 흐름을 너무 드러내지 않고, 사운드에 따라 점진적으로 쌓아가는 방식을 선택하였고, 그에 따라 음향은 장면의 중심이 됩니다. 시선 없이도 감정을 ‘보게’ 만드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결론
<악의 도시 (The Devil You Know)>는 말보다 소리, 음악보다 정적, 장면보다 감정의 진동으로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배우 현우성의 절제된 연기와 임 감독의 밀도 높은 연출, 그리고 음향감독의 설계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작품은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 청각으로 심리를 파고드는 영화로 자리매김합니다. 가장 무서운 건 괴성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울리는 심장의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조용한 공포’를 소리로 완성한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