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운드로 재구성된 팩트 전쟁의 현장
서론
얄미운 사랑 (Nice to Not Meet You) (2025)는 tvN에서 11월 3일부터 방영되는 8부작 드라마로, 초심을 잃은 국민 배우와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진실을 파헤치는 연예부 기자가 서로에게 쌓인 감정과 사실을 내던지며 대립하는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갈등이나 이슈 소모형 작품이 아니라, 말이라는 도구가 실제로 사람을 겨누는 무기처럼 활용되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운드적 관점에서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말의 강도와 울림, 공간성, 침묵의 무게가 영상보다 더 선명하게 감정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팩트 폭격이라는 테마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대사는 장면을 설명하는 기능을 넘어서 캐릭터의 감정과 서사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투의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운드 디렉션은 대사의 리듬과 공간의 면적, 잔향, 명료도, 그리고 주변 소음의 존재를 모두 계산하여, 시청자가 감정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만드는 설계를 필요로 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 텍스트”이며, 그 핵심이 바로 소리에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드라마 전반에서 사운드가 어떻게 등장인물의 심리와 갈등을 드러내고, 시청자를 작품의 감정선에 붙잡아 두는지 실질적인 음향 연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이 작품의 시각적 대비는 배우와 기자라는 두 인물이 처한 환경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대비는 소리로 더욱 선명하게 묘사됩니다. 배우의 공간은 처음에는 깔끔하고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울림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리허설실, 대기실, 사무 공간 등 배우가 머무는 공간은 잔향이 일정하고 반사음이 안정적이며, 배경 소음이 통제된 상태로 들려옵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견고한 위치와 안정된 커리어를 상징하는 음향 기호로 기능합니다. 그러나 내면이 무너질수록 소리는 미세하게 깨집니다. 확실했던 반사음의 선명도가 떨어지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작은 기계 소음이나 환풍기 소리가 공간에 묻어 들어오며 배우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시청자는 시각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의 ‘미세한 균열’을 사운드를 통해 감지하게 됩니다.
반면 기자의 공간은 처음부터 빠른 타격감을 가진 음향으로 묘사됩니다. 취재 자료 정리, 키보드 타이핑, 모니터 조작, 전화 연결음 등 속도감이 있는 소리들이 리듬처럼 배치되어 기자의 캐릭터를 설명합니다.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에 대한 확신, 진실을 밝히겠다는 전투적 태도, 움직이는 속도가 그대로 소리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나 취재가 깊어질수록 기자의 공간도 변화합니다. 주변 환경음이 줄고 정적이 커지며, 낮고 묵직한 톤의 잔향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정보를 손에 넣어가는 과정이 곧 심리적 부담과 공포로 바뀌는 지점을 소리로 표현한 것입니다.
두 인물이 대치하는 장면은 사운드 연출의 핵심입니다. 말이 칼이 되고, 팩트가 총알이 되고, 대사가 발사체처럼 날아가는 장면들입니다. 이때 사운드는 특수효과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목소리의 배치와 음량 곡선을 세밀하게 조정해 감정의 체적을 키웁니다. 특정 문장을 던지고 그 뒤에 침묵을 0.5~1초 정도 의도적으로 두는 것만으로 감정의 무게가 시청자에게 바로 전달됩니다. 이 침묵은 오디오적으로 “소리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정이 화면을 압박한다”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공간의 구조 역시 음향 처리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회의실처럼 반사면이 많은 공간에서는 대사가 또렷하고 강하게 들리며, 복도나 계단 같은 공간은 울림이 좁고 명료도가 떨어져 답답함과 압박감을 전달합니다. 시청자는 화면을 통해 사건을 보고 있지만, 소리를 통해 감정의 온도를 훨씬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이처럼 나이스 투 낫 미트 유는 감정과 서사를 단순히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성질을 통해 등장인물의 정신상태와 상황을 동일하게 경험하도록 만드는 음향 중심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얄미운 사랑은 배우와 기자가 서로에게 쌓아 온 감정, 신념, 분노, 후회를 말이라는 형태로 던지는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이 말들이 시청자에게 단순히 정보나 이야기 전달로 소비되지 않고 감정의 충격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핵심에는 사운드 연출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음향 설계는 배경음과 효과음을 화려하게 사용하기보다, 대사와 침묵, 공간의 울림, 주변 소리를 이용해 갈등과 심리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시청자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던지는 말뿐 아니라, 그 말이 남긴 파편과 흔들림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텍스트를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청각적으로 체험하는 방식의 제작 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덕분에 나이스 투 낫 미트 유는 TV 화면으로 시청해도 강한 몰입감을 제공하며, 사운드를 중심으로 감상한다면 같은 장면도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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