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사랑의 소리
서론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Leaving Mom) (2025)>은 사랑과 죄책감, 그리고 기억의 소멸을 다루는 섬세한 휴먼드라마다. 영화는 베트남 호치민의 좁은 골목에서 길거리 이발사로 살아가는 ‘환’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의 곁에는 알츠하이머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어머니가 있다. 환에게 어머니는 끝없는 돌봄의 대상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그러나 그녀의 병세가 악화될수록, 환의 일상은 조용히 무너진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의 서사를 넘어 ‘기억을 잃어가는 세계 속에서 사운드가 어떻게 감정을 붙잡는가’ 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소리로 기억을 이어가려는 아들의 내면이, 장면마다 작은 울림으로 살아 숨 쉰다.
1. 사운드로 재현된 일상의 파편 — 이발소의 리듬과 도시의 호흡
영화의 초반부에서 사운드는 현실적인 거리의 온도를 생생히 전한다. 바리캉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소리, 전동기의 미세한 진동, 모래 먼지를 가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일상의 배경음으로 겹쳐진다. 그러나 그 모든 소리 속에서도 어머니의 낮은 기침, 가늘게 부르는 옛 가요 한 소절이 중심을 잡는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이발소의 리듬을 ‘삶의 박자’로 설정한다. 리듬은 반복되지만 완벽히 일정하지 않다. 조금씩 흐트러지는 박자 속에서, 환의 불안과 피로가 들린다. 특히 어머니의 목소리가 처음 흐려질 때, 배경의 도시 소음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며 청각적 혼란을 만든다. 이는 관객이 ‘기억의 소멸’을 직접 경험하도록 설계된 연출이다. 대사는 사라지고, 대신 잔잔한 선풍기 소리와 먼 곳의 종소리가 남는다. 그 소리만으로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전해진다.
2. 침묵의 대화 —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청각의 온도
<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Leaving Mom) >의 중심에는 ‘말하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 어머니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 때, 환은 언어 대신 ‘소리’로 소통하려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틀고, 조용히 머리를 빗겨 드린다. 그 장면에서 음악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소리, 손끝이 스치는 섬유의 마찰음이 감정의 언어가 된다. 사운드 디렉터는 그 순간, 잔향을 길게 늘려 소리의 여운을 기억처럼 남긴다. 관객은 마치 한순간의 온기를 오래 잡아두려는 듯한 환의 마음을 청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어머니가 잠시 정신이 또렷해져 “환아”라고 부를 때다. 그 짧은 대사에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그녀의 목소리만이 남는다. 이것은 단순한 음향효과가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이 잠시 돌아오는奇蹟’을 소리로 재현한 감정의 절정이다.
3. 서울로 향하는 여정 — 죄책감과 해방이 교차하는 사운드의 구조
후반부에서 영화는 조용히 리듬을 바꾼다. 환은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그녀가 평생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향한다.
기차와 비행기, 그리고 서울의 소음이 겹쳐지며 사운드는 점점 밀도를 잃는다. 마치 환의 마음속 갈등이 무겁게 눌린 듯한 구조다. 그는 스스로의 결정을 “버림”이라 부르지만, 실은 “돌려보냄”에 가깝다. 사운드는 그 복합적인 감정을 포착한다. 공항의 안내방송, 바람 소리, 어머니의 숨소리가 뒤섞이면서 마치 시간과 공간이 흐려지는 듯한 청각적 몽타주가 만들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환이 어머니를 서울의 하늘 아래 내려놓을 때, 모든 소리가 멈춘다. 그 정적은 슬픔의 침묵이 아니라, 사랑의 종결음처럼 들린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옛 노래가 다시 들린다. 그 소리는 기억의 잔향이자, 남은 자의 구원이다.
결론
<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Leaving Mom) (2025)>은 소리로 감정을 이끌어가는 영화다.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의 잔혹함을 자극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대신,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청각적 소멸’로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 사운드는 대사보다 진실하고, 음악보다 인간적이다. 어머니의 목소리, 환의 숨결, 도시의 먼 소음까지 — 모든 소리가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다. 사운드 디렉터의 시점에서 <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Leaving Mom) >은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는다” 는 사실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소리를 통해 남은 사랑, 그리고 떠나는 용기를 기록하는 영화. 그 마지막 정적 속에서, 관객은 사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듣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