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가 직조한 히어로들의 교차점, 그 감각적 융합의 완성
🟡 서론: 두 세계가 충돌하는 곳, 소리는 가장 먼저 흔들린다
《그리드맨 유니버스》는 전작인 《SSSS.GRIDMAN》과 《SSSS.DYNAZENON》의 세계관을 통합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특촬과 애니메이션을 잇는 독특한 감성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두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하나의 위협에 맞서 힘을 모으는 서사를 통해, 단순한 팬 서비스 차원을 넘어 세계관의 ‘확장’과 ‘감정적 융합’을 시도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청각적 설계다. 디지털과 현실이 맞닿는 배경에서 ‘소리’는 세계관의 충돌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는 눈에 보이는 연출보다도 먼저 ‘소리’로 다가온다. 사운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 세계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모든 드라마와 액션의 근간을 이룬다.
🔊 1. 차원을 넘는 전투, 공간감으로 설계된 사운드의 스케일
《그리드맨 유니버스》의 전투 시퀀스는 전형적인 메카 액션을 기반으로 하되, 디지털 세계라는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운드로 공간을 확장하는 전략을 취한다. 특히 다차원에서 벌어지는 충돌 장면에서는 전자음, 기계음, 중력의 왜곡음을 혼합해 시청자에게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닌, 현실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청각적으로 전달한다.
그리드맨이 등장할 때 울리는 전자 베이스의 테마음은 마치 무언의 선언처럼 공간을 지배하며, 다이나제논의 기계 결합 시퀀스에서는 톱니가 맞물리는 금속성 음향과 고출력 증폭음이 더해져 물리적 압도감을 만든다. 이 모든 사운드는 단순히 ‘크게’ 들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치와 방향성, 반사와 잔향을 통해 입체적인 전장을 구현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Dolby Atmos 환경에서는 이런 사운드의 입체감이 극대화되어, 적의 등장 방향이나 충격의 파장이 관객의 좌우 혹은 후방에서 실제로 다가오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본 작품은 극장에서 체험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사운드 중심의 영화다.
🎼 2. 기억과 감정을 매개하는 음악, 멜로디의 정체성
《그리드맨 유니버스》는 액션 중심의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인물 간 감정선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 특히 유타와 리카, 요모기와 유메 사이의 감정은 대사보다도 음악을 통해 더 깊이 전달된다. 피아노와 스트링 기반의 테마는 유타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때, 혹은 리카와 마주앉아 조용히 대화할 때 삽입되며,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는 심리의 결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기존 시리즈 팬이라면 익숙할 음악이 변주되어 삽입되기도 한다. 예컨대 《SSSS.GRIDMAN》의 메인 테마는 어쿠스틱 기타 버전으로 등장해 새로운 시간축을 반영하고, 《DYNAZENON》의 전투 테마는 브라스와 리듬이 강화되어 융합된 세계의 역동성을 암시한다. 음악은 이처럼 캐릭터의 정체성과 세계관의 확장을 동시에 상징하며, 팬들에게는 감정의 회고로, 신규 관객에게는 스토리의 리듬으로 작용한다.
🧠 3. 캐릭터의 내면을 드러내는 정적과 침묵의 설계
흥미롭게도 《그리드맨 유니버스》는 ‘크고 시끄러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핵심적인 장면들에서는 오히려 침묵과 정적을 활용한다. 유타가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 리카가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할 때, 요모기가 전투 후 허탈하게 앉아 숨을 고를 때 — 이러한 순간에는 음악은 물론 주변 환경음까지 제거되어, 캐릭터의 내면 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적 설계는 청각적 여백을 만들어 줌으로써, 이전까지 쌓인 긴장과 소리를 더욱 뚜렷이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즉, ‘없음’으로 인해 ‘있음’이 강조되는 구성이다. 이는 소리의 강약만을 다루는 사운드 디자인을 넘어, 감정의 구조 자체를 설계하는 고차원적 연출이다.
🟢 결론: 세계관의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청각적 완성
《그리드맨 유니버스》는 단순히 인기 IP의 통합극이 아니다. 사운드를 중심으로 구축된 하나의 서사 구조이며, 세계관의 충돌을 시각적 화려함이 아니라 청각적 설계를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한 사례다.
영화 속 모든 전투와 감정은 소리로 미리 암시되며, 익숙한 테마는 변화된 세계의 정서를 담아낸다. 시청자는 이 작품을 통해 ‘보는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적 진폭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드맨 유니버스》는 바로 그런 영화다 눈보다 귀로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