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울리는 감정의 잔향, 소리로 완성된 성장 서사
1. 서론
2025년 개봉한 영화 <보이 인 더 풀(Boy in the Pool)>은 한 소년이 수영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마주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감성 드라마입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 스며드는 미묘한 변화와 인물들의 감정을 과장 없이 그려낸 이 작품은, 시각적 요소보다 청각적 설계에 집중함으로써 더욱 깊은 몰입감을 전달합니다. 특히 수영장이라는 ‘소리의 왜곡이 발생하는 공간’을 주요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사운드의 질감과 공간성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음향감독의 시선으로, <보이 인 더 풀>이 소리로 어떻게 인물의 심리, 관계의 거리, 성장의 흐름을 조형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1. 수면 위와 아래 – 공간감의 전환이 만든 정서의 레이어
<보이 인 더 풀>의 가장 두드러지는 청각적 특징은 바로 ‘수면 위와 수면 아래의 사운드가 극명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수면 위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발소리, 물 튀기는 소리, 햇빛 아래 찰랑이는 물의 반사음이 생생하게 들려오며, 여름의 자유로움과 활기를 전해줍니다. 반면, 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소리는 둔탁하게 변하고 저주파가 강조되며, 세상과의 단절이 느껴지는 청각적 변화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공간적 특성을 넘어서, 소년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정서적 장치로 작용합니다. 그는 물속에 있을 때 오히려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운드를 통한 공간의 대비는 영화의 핵심 감정선을 이끄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2-2. 소리 없는 교감 – 대사보다 숨소리와 파동으로 전해지는 감정
<보이 인 더 풀>은 많은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 간의 교감은 비언어적 소리, 즉 숨소리, 눈빛 교환 직후의 정적, 수면 위로 올라올 때의 호흡 등으로 전달됩니다. 주인공 소년이 또래 친구나 가족과 갈등을 겪고 화해하는 장면에서 사운드는 극도로 절제되며, 오히려 침묵과 여백이 감정의 깊이를 대신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과 말없이 식사하는 장면에서는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 음식을 씹는 소리, 물컵을 내려놓는 소리만이 들리며, 대화 없이도 갈등과 긴장감이 충분히 전해집니다. 또한, 수영을 마친 뒤 탈의실에서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와 수건을 짜는 소리마저도 인물의 감정 상태를 암시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영화는 사운드의 강렬함보다 사운드의 절제가 더 큰 감정적 울림을 준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2-3. 물의 리듬 – 성장 서사를 이끄는 청각적 시선
성장영화로서 <보이 인 더 풀>이 돋보이는 이유는, 인물의 변화와 성숙 과정을 청각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영화 초반에는 소년이 수영을 힘들어하고 물속에 머무는 시간이 짧은 반면,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숨 고르기, 입수와 상승, 물속 체류 시간이 길어지며 사운드의 리듬 역시 안정되어 갑니다. 이는 곧 주인공의 심리적 성장과도 연결됩니다. 수영을 통해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처음에는 불안했던 수면 아래의 공간이 점점 편안한 내면의 공간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운드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의 변화 그 자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보이 인 더 풀>의 큰 미덕입니다. 음악 또한 과하게 삽입되지 않고, 물의 소리와 주변 환경음을 따라 흐르며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뒷받침합니다.
3. 결론
<보이 인 더 풀(Boy in the Pool)>은 시각보다 청각을 통해 감정을 체험하게 만드는 섬세한 영화입니다. 특히 수영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활용해 ‘소리의 왜곡’과 ‘침묵의 활용’이라는 사운드 전략을 통해 캐릭터의 내면과 성장 과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 드라마의 전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리듬을 물의 리듬처럼 조용히 흘려보이며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 여운을 남깁니다. 대사보다 숨소리, 음악보다 물의 울림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보이 인 더 풀>은, ‘소리로 자라는 이야기’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