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연결된 기억과 여정의 기록
1. 서론
2025년 4월 30일, 따뜻한 감성으로 무장한 영화 <영동선(East Shore Line)>이 개봉합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열차 ‘영동선’을 배경으로, 잊고 지냈던 관계와 감정을 하나씩 되짚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관객 여러분께 아날로그의 향수를 선사하면서도 섬세한 내면의 울림을 건넵니다.
<영동선>은 시나리오와 영상미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낸 영화입니다.
특히 열차가 달리는 리듬, 창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차창 밖의 삶의 풍경이 묻어나는 소리 등은,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음향 감독의 시선으로, <영동선>이 어떻게 '소리'로 감정과 기억, 그리고 관계를 이어나갔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1. 열차라는 공간 – 시간과 기억이 흐르는 소리의 캔버스
<영동선>의 핵심 무대는 단연 열차 안입니다. 좁고 흔들리는 좌석, 서로 다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통로, 그리고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 이 모든 요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소리의 무대'가 됩니다. 열차가 출발할 때의 출렁이는 금속 마찰음, 철로 위를 달릴 때 반복적으로 울리는 차륜 소리, 차장이 지나가며 안내방송이 흐를 때의 울림. 이러한 모든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하는 감각적 장치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차창 밖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풍경의 소리 대신 기억 속 소리들이 교차되며 삽입됩니다.
과거 어딘가에서 들려왔던 웃음소리, 낡은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 오래된 기적 소리 등이 현실의 열차 소리와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관객 여러분께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감각을 전달합니다.
2-2.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환경음과 대사 설계
이 영화는 전면적인 음악보다는 **‘환경음’과 ‘침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인물의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인물들이 말없이 앉아 서로를 마주하는 장면에서, 굳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좌석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역사의 방송, 창문에 부딪히는 햇살이 만들어낸 따뜻한 정적이 모든 감정을 말해줍니다.
그 정적 속에서는 말보다 더 강한 울림이 존재하며, 관객 여러분도 자연스럽게 인물의 내면을 함께 들여다보게 됩니다. 또한 인물 간의 대사에서도 현실감 있는 거리감과 공간감을 구현하기 위해 마이크 배치와 반사음을 정교하게 설계하였습니다. 가까운 좌석에서 들려오는 속삭임과, 통로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잡담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함께 탄 열차'라는 공간감이 사운드로 완성됩니다.
2-3.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변화하는 사운드 톤
이 영화는 단순히 공간 이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을 통해 인물들이 내면의 변화를 겪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운드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됩니다. 초반에는 열차 소리가 단조롭고 반복적이지만, 중반 이후로는 풍경이 바뀌고 인물들의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열차 소리조차 미묘하게 변화합니다. 차음이 줄어들며 더 많은 자연음이 유입되고, 외부 환경과의 연결감이 더 강해지는 방식입니다.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점점 더 풍부해지고, 정차 직전에는 사운드를 일시적으로 최소화하여, 마치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감정의 여운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관객 여러분께 마치 한 편의 시(詩)를 귀로 읽은 듯한 여운을 남깁니다.
3. 결론
<영동선(East Shore Line)>은 열차라는 이동 수단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이지 않지만 감정의 결을 만들어내는 ‘소리’ 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철로 위를 달리는 소리, 정적 속의 한숨, 바람과 기억이 함께 섞인 공간음. 이 영화는 소리로 시간을 연결하고, 소리로 감정을 움직이며, 소리로 기억을 환기합니다.
2025년 4월 30일, 이 아름답고 조용한 여정을 여러분의 귀와 마음으로 함께 따라가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영동선>은 그저 도착을 위한 영화가 아닌, 그 여정을 오롯이 ‘듣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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